다리 저림이 한 달 넘게 안 사라진다면 협착증을 의심하세요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리 저림이 4주 이상 지속되고, 걷다 보면 종아리가 터질 듯 아파서 쪼그려 앉아야 하는 패턴이 반복된다면, 단순 피로가 아니라 요추 척추관협착증의 신경원성 파행입니다. 60대 이상에서 가장 흔한 보행 장애 원인이며, 조기에 잡으면 절반 이상은 비수술적으로 호전됩니다.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이겁니다. "원장님, 다리가 저린 게 한참 전부터 그랬는데 그냥 나이 탓인 줄 알고 참았어요." 70대 여성분께서 손을 잡으며 하신 말씀입니다. 보호자분이 옆에서 "어머니가 마트만 가면 중간에 벤치 찾아서 앉으세요"라고 덧붙이셨고, 저는 그 자리에서 진단의 80%를 끝냈습니다.
다리 저림은 흔한 증상입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흔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참기 때문입니다.
[📷 사진1: 진료실에서 70대 여성 환자의 다리 감각 검사를 시행하는 장면]
다리에서 시작된 신호인데, 왜 허리가 문제인가
척추관(spinal canal)은 척추뼈 한가운데 뚫린 신경 통로입니다. 이 통로 안으로 척수와, 요추 부위에서는 마미신경총(cauda equina)이 지나갑니다. 협착증이란 이 통로가 좁아져서 그 안의 신경이 눌리는 병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겁니다. 통로가 좁아지는 것은 한 군데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황색인대가 비후되어 뒤쪽 벽이 두꺼워지고, 추간판이 후방으로 팽윤되어 앞쪽이 밀고 들어오고, 후관절(facet joint)이 비대해져 측면 통로(추간공)까지 좁아집니다. 세 방향에서 동시에 압박이 가해지는 입체적 사건입니다.
쉽게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출퇴근길 지하철 환승 통로가 본래 4미터 폭이었는데, 양옆 벽이 안쪽으로 1미터씩 부풀어 오르고, 바닥에서 천장 쪽으로도 구조물이 자라 올라온다고 상상해보십시오. 평소엔 어떻게든 지나갈 수 있지만 출퇴근 인파가 몰리면(걷기로 신경 혈류 수요가 증가하면) 정체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멈춰서야 합니다. 신경원성 파행(neurogenic claudication)이 바로 이 현상입니다.
Bagley와 동료들의 종설(F1000Research, 2019)은 협착증을 "단순한 공간 협소가 아니라, 신경혈관 단위에 가해지는 동적 압박과 허혈성 손상의 복합 현상"으로 정의합니다. 즉 X-ray나 MRI에서 보이는 구조적 좁아짐만으로는 증상이 완전히 설명되지 않으며, 보행 시 신경근 정맥총(epidural venous plexus)의 울혈, 척수액 순환 장애, 신경근 미세허혈이 동반된다는 것입니다.
[📷 사진2: 정상 척추관과 협착증 척추관을 비교한 해부학 일러스트, 황색인대 비후·추간판 팽윤·후관절 비대 세 방향 압박 표시]
다리 저림인데 왜 양쪽에서 같이 나타나는가
환자분들이 가장 헷갈려 하시는 부분이 이겁니다. 한쪽 다리만 저린 게 아니라 양쪽이 번갈아 또는 동시에 저립니다. 어떨 땐 종아리, 어떨 땐 발바닥, 어떨 땐 허벅지 뒤쪽이 저립니다. "신경통이 옮겨다닌다"고 표현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마미신경총은 신경 다발이지 한 가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L1부터 S1까지 내려가는 신경뿌리 수십 가닥이 하나의 통로 안에 함께 들어 있고, 협착이 진행되면 자세와 활동에 따라 그날그날 다른 신경뿌리가 압박을 받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오른쪽 종아리, 오늘은 왼쪽 발바닥, 내일은 양쪽 허벅지 뒤쪽이 됩니다.
이 점이 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과의 가장 큰 감별점입니다. 디스크 탈출은 대개 한 신경뿌리만 누르기 때문에 통증 부위가 일정합니다. "왼쪽 엄지발가락이 항상 저려요"라고 호소하는 경우가 디스크에 가깝고,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종일 다리가 묵직해요"라고 호소하는 경우는 협착증입니다.
[📷 사진3: 마미신경총 다발 구조와 협착 부위별 증상 분포 다이어그램]
진단을 결정짓는 두 가지 결정적 신호
병원에 오시기 전에 자가 체크할 수 있는 신호가 있습니다.
첫째, 앞으로 숙이면 편해지는가. 마트 카트를 밀거나, 자전거 페달을 밟거나, 식탁에 손을 짚고 앞으로 숙이면 통증이 사라진다면 협착증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척추를 굴곡시키면 황색인대가 펴지면서 척추관 단면적이 약 20~40%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허리를 펴거나 뒤로 젖히면(신전) 척추관이 다시 좁아지면서 증상이 즉시 재발합니다. 이 굴곡 의존성(flexion dependency)은 협착증의 거의 진단적 소견에 가깝습니다.
둘째, 걷는 거리는 줄어드는데 자전거는 멀쩡히 타는가. 협착증 환자분들은 200~300m만 걸어도 다리가 터질 듯 아파 쉬어야 하지만, 자전거는 30분 이상 거뜬히 타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전거 자세 자체가 앞으로 숙인 굴곡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이 패턴이 보이면 혈관성 파행(말초동맥질환)이 아니라 신경원성 파행으로 거의 확정됩니다.
세 번째 핵심 신호는 야간 증상입니다. 누워서 다리를 쭉 펴면 저림이 심해지고, 옆으로 새우잠을 자거나 무릎 사이에 베개를 끼우고 자야 편한 경우 — 신전 자세에서 척추관이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 사진4: 환자가 진료실에서 허리를 굴곡·신전시키는 체위 비교 시범 장면]
비수술 치료가 우선이지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협착증 진단이 나오면 처음 6~12주는 보존적 치료로 시작합니다. 약물치료, 신경차단술, 도수치료, 운동치료가 네 기둥입니다.
최근 European Journal of Clinical Pharmacology(2026) 체계적 문헌고찰(n=860)은 NSAIDs와 프레가발린의 병합이 단독 사용보다 VAS 통증 점수 감소에서 유의한 효과를 보였다고 보고했습니다. 다만 NSAIDs는 위장관 출혈, 신기능 저하 위험이 있어 60세 이상에서는 단기 사용이 원칙입니다.
운동치료의 효과도 입증되어 있습니다. 2023년 발표된 메타분석(n=1661)에서는 굴곡 기반 저항 운동이 ODI(요통기능장애지수)를 0.32 표준편차만큼 개선시켰습니다. 핵심은 "굴곡 기반"입니다. 협착증 환자에게 윌리엄스 굴곡 운동, 자전거 에르고미터, 수영(자유형은 신전 자세이므로 배영보다 평영 권장)은 좋지만, 맥켄지 신전 운동은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킵니다. 디스크와 정반대입니다.
| 치료법 | 1차 효과 시점 | 적응증 | 한계 |
|---|---|---|---|
| NSAIDs + 프레가발린 | 2~4주 | 경도~중등도 통증 | 위장관·신장·졸음 부작용 |
| 경막외 신경차단술 | 즉시~2주 | 급성 악화기 | 3~6개월 후 재발 흔함 |
| 도수치료 + 굴곡 운동 | 4~8주 | 모든 단계 보조 | 단독으로는 한계 |
| 신경성형술(PEN) | 1~4주 | 중등도, 한 분절 | 다분절 협착엔 효과 제한 |
| 양방향 척추내시경(BESS) | 즉시 | 보존치료 실패, 파행<200m | 다분절 수술 시야 부담 |
| 현미경 감압술 | 즉시 | 광범위 다분절, 불안정증 | 절개 큼, 입원 길어짐 |
[📷 사진5: 초음파유도 경막외 신경차단술 시술 장면]
그러나 보존적 치료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6개월 이상 적극 치료에도 보행거리가 100m 이내, 야간 통증이 잠을 깨우는 수준이면, 더 기다리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신경이 만성 압박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회복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손가락 힘줄의 재생력이 13세 이후 급격히 떨어지듯, 신경근도 만성 압박이 1년 이상 지속되면 축삭 변성과 슈반세포 손상이 비가역적으로 진행됩니다.
수술을 결정하는 기준, 그리고 내시경의 자리
수술을 권하는 기준은 명확합니다.
- 6개월 이상 보존적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보행 장애
- 보행거리 200m 미만이 일상화된 경우
- 야간 마비, 배뇨 장애, 회음부 감각 저하(마미증후군 의심 — 응급)
- MRI에서 중증 협착(척추관 단면적 50mm² 미만)
문제는 "어떻게 감압할 것인가"입니다. 과거에는 광범위 후궁절제술(laminectomy)이 표준이었지만, 척추 후방 구조물을 많이 제거하면서 술후 불안정성과 인접분절 퇴행이 문제였습니다.
최근 5년간 흐름은 분명히 최소침습 감압술 쪽입니다. 양방향 척추내시경(Biportal Endoscopic Spinal Surgery, BESS)이 대표적입니다. 작은 절개 두 개로 한쪽에서 들어가 양측 신경을 모두 감압하는 방식입니다. 후방 인대와 근육을 보존하기 때문에 술후 불안정성이 줄고 회복이 빠릅니다.
근거도 견고합니다. Scientific Reports(2025)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n=2860)에서 최소침습 감압술은 기존 개방 수술 대비 합병증 발생률을 약 42% 수준으로 낮추었고, 출혈량과 입원 기간도 유의하게 감소했습니다. World Neurosurgery(2025) 메타분석(n=801)에서는 다열근 위축(muscular dystrophy) 발생률이 16.61%포인트 감소했다고 보고했는데, 이는 술후 만성 요통의 주요 원인을 줄였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모든 환자에게 내시경이 정답은 아닙니다. Neurosurgical Review(2025) 메타분석(n=1039)에서 전체 합병증률은 약 14%로 보고되었고, 특히 다분절 협착, 척추전방전위증을 동반한 경우, 심한 후관절 비대가 있는 경우는 내시경 단독보다는 현미경 감압이나 융합술 병행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Bydon과 동료들의 종설(Neurosurgery Clinics of North America, 2019)은 척추전방전위증을 동반한 협착증에서 감압만 시행한 군과 융합술까지 시행한 군의 장기 결과를 비교하며, 불안정성 정도에 따른 개별화 결정이 핵심임을 강조했습니다. "최소침습이 무조건 좋다"는 환자분들의 막연한 기대와 달리, 안정성을 보장해야 할 케이스에서는 필요한 만큼의 침습이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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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6: 양방향 척추내시경 수술 도구와 술중 화면 모식도]
수술 후 진짜 시작되는 신경 회복의 시간표
수술이 끝났다고 다리 저림이 다음 날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압박은 즉시 풀렸지만, 그동안 눌려 있던 신경이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신경 회복은 세 단계로 진행됩니다. 수술 후 2~4주에는 부종이 빠지면서 감각의 30~50%가 회복됩니다. 이 시기에는 "수술 전보다 더 저린 것 같다"고 호소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데, 이는 마취된 신경이 깨어나면서 일시적으로 이상감각이 증가하는 정상 반응입니다. 수술 후 4~12주에는 슈반세포가 재생되면서 절반 이상의 환자에서 보행거리가 정상화됩니다. 3개월 이후 12개월까지는 만성 압박으로 손상된 축삭이 천천히 회복되는 시기이며, 이 시기의 운동 재활이 최종 결과의 30%를 결정합니다.
재활의 핵심은 코어 안정화입니다. 다열근, 복횡근, 골반저근을 강화하지 않으면 척추 분절의 미세 흔들림이 잔존 신경근에 다시 자극을 줍니다. 수술 후 3주차부터 슬링 운동, 6주차부터 굴곡 기반 코어 운동, 12주차부터 저항 운동을 단계적으로 도입합니다.
식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비타민 B군(특히 B12, B1, B6 복합)은 슈반세포의 미엘린 합성에 필수적이며, 알파리포산은 신경 미세혈관의 산화 스트레스를 줄입니다. 당뇨가 있으신 분들은 혈당 조절이 신경 회복 속도를 직접 결정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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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저림은 시간으로 해결되는 증상이 아닙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다리 저림이 한 달 넘게 안 사라진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몸이 보내는 명확한 신호이고, 그 신호의 절반 이상은 척추관협착증에서 옵니다.
조기에 진단하면 보존적 치료만으로도 보행거리와 야간 통증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적절한 시기를 놓치면 신경이 만성 압박에 적응하면서 회복력이 떨어지고, 결국 수술이 필요해집니다. 수술이 필요할 때는 미루지 마시되, 어떤 수술이 본인에게 맞는지는 협착의 분절 수, 불안정성, 후관절 상태를 종합해 결정해야 합니다.
서소문로 광화문 일대에서 진료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케이스는, 5년 전에 오셨으면 6개월 운동치료로 끝났을 분이 보행거리 50m로 줄어들어 오시는 경우입니다. 다리 저림은 참는 게 아니라 진단받는 신호입니다.
현명신경외과의원 · 김상현 원장 · 신경외과 전문의 (20년 경력)
서울 중구 서소문로 120 ENA센터 3층 · 1661-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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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Bagley C, MacAllister M, Dosselman L (2019). . . DOI: 10.12688/f1000research.16082.1
- Bydon M, Alvi MA, Goyal A (2019). . . DOI: 10.1016/j.nec.2019.02.003
- Yoshizawa M, Nagai K, Asano S (2023). . . DOI: 10.2169/internalmedicine.076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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