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먹으면 좀 낫는데 끊으면 재발, 진통제 의존의 한계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진통제로 통증이 잡히는 만성 디스크 환자의 상당수는 약을 끊으면 다시 재발합니다. 약은 통증이라는 알람을 꺼주는 것이지, 신경을 누르고 있는 디스크 조각을 치워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이겁니다. "원장님, 처방받은 약 먹을 때는 살 만한데 끊으면 다시 아파요. 약이 평생 가는 건 아니죠?"
5월부터 6월까지 우리 병원 EMR 데이터를 보면 '상세불명의 신경통 및 신경염' 환자가 전월 대비 80% 이상 증가합니다. 봄철 활동량이 늘면서 그동안 약으로 눌러놨던 신경뿌리병증이 한꺼번에 터지는 시기죠. 이 분들 대부분이 6개월에서 길게는 3년까지 진통제와 신경통약을 드시던 분들입니다.
오늘은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진통제가 어디까지 해줄 수 있고, 어디서부터는 다른 길을 봐야 하는지.
약을 끊으면 왜 다시 아픈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통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허리디스크에서 통증은 두 갈래로 옵니다. 첫째, 탈출된 수핵이 신경뿌리를 물리적으로 누릅니다. 둘째, 그 수핵 자체가 염증성 화학물질(TNF-α, IL-6, phospholipase A2 같은 사이토카인)을 분비해서 신경을 화학적으로 자극합니다. 신경뿌리 주변에 미세한 화상을 입히는 셈입니다.
진통제는 이 두 갈래 중 두 번째, 화학적 자극으로 발생한 통증 신호 전달만 차단합니다. NSAIDs(소염진통제)는 프로스타글란딘 합성을 막아 염증 반응을 누그러뜨리고, 가바펜틴이나 프레가발린 같은 신경통약은 손상된 신경에서 발생하는 비정상적 신호를 진정시킵니다. 트라마돌이나 옥시코돈 같은 마약성 진통제는 척수와 뇌의 통증 수용체를 직접 차단합니다.
여기까지가 약이 해주는 일입니다. 신경을 누르고 있는 수핵 조각, 즉 압박의 근원은 그대로입니다.
쉽게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발에 압정이 박혀 있는데 진통제만 먹는 것과 같습니다. 약을 먹으면 통증은 줄어들지만 압정은 그대로 박혀 있습니다. 약 효과가 떨어지면? 다시 아픕니다. 그 사이 압정이 박힌 자리는 점점 더 망가집니다. 신경뿌리는 신기하게도 비슷한 원리로 작동합니다.
만성화된 신경뿌리병증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지속적 압박으로 신경뿌리 내부에 부종, 미세혈관 손상, 탈수초화(demyelination)가 진행되면 약을 먹어도 통증이 점점 덜 잡히는 시점이 옵니다. 이른바 '중추 감작(central sensitization)'이 일어나서 통증 자체가 신경계의 학습된 반응으로 굳어지는 단계입니다. 이렇게 되면 디스크가 객관적으로 줄어들어도 통증은 남습니다.
본원 6개월 데이터를 보면 추간판장애로 인한 좌골신경통(M51.1) 환자가 79명, 이 중 신환 비율이 24.1%입니다. 즉 약 76%는 다른 곳에서 진통제 치료를 받다가 호전이 안 되어 오시는 분들입니다.
한국에서 옥시코돈을 처방받는 디스크 환자가 늘고 있다
이 부분은 좀 더 깊이 들어가겠습니다.
2020년 대한통증학회지에 발표된 김초롱 등의 한국인 마약성 진통제 인식 연구(Korean J Pain 2020;33(3):234-244)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만성 비암성 통증에 대한 옥시코돈, 트라마돌, 펜타닐 패치 처방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환자들이 이 약물을 처방받으면서도 의존과 중독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한가. 만성 디스크로 오시는 환자분들 중 상당수가 트라마돌(트리돌), 옥시코돈(옥시콘틴), 부프레노르핀 패치(부프레르) 같은 약을 6개월 이상 복용 중입니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좋습니다. 그래서 끊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내성(tolerance). 같은 효과를 보려면 점점 용량이 올라갑니다. 둘째, 의존(dependence). 약을 끊으면 금단증상(불안, 식은땀, 근육통, 불면)이 생깁니다. 셋째, 통각과민(opioid-induced hyperalgesia). 역설적으로 장기 복용 환자에서 통증 역치가 낮아져 '약 때문에 더 아파지는' 현상이 보고됩니다.
6개월 이상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 중이라면, 단순히 '잘 듣는 약'이 아니라 '서서히 의존이 진행 중인 약'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끊을 시점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습니다.
이 환자분들에게 제가 드리는 말씀은 똑같습니다. 약을 무작정 끊으라는 게 아니라, 약을 줄여나갈 수 있는 근본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는 겁니다.
진통제, 신경차단술, 신경성형술, 내시경 수술의 위치
이 네 가지 치료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보겠습니다. 어떤 게 더 좋고 나쁜 게 아니라, 각자의 자리가 있습니다.
| 치료법 | 작용 위치 | 효과 지속 | 적응증 | 한계 |
|---|---|---|---|---|
| 경구 진통제 | 전신(혈류) | 4~12시간 | 급성/경증 통증 | 압박은 그대로, 위장·신장 부담, 의존 |
| 신경차단술 | 신경뿌리 주변 | 2주~3개월 | 급성 신경뿌리병증 | 반복 시 효과 감소, 압박 미해결 |
| 신경성형술(PEN) | 경막외강·유착 부위 | 6개월~1년 | 만성 좌골신경통, 유착 | 큰 탈출에는 한계 |
| 풍선확장술 | 추간공·경막외강 | 6개월~1년 | 협착 동반 디스크 | 비용, 보험 적용 제한 |
| 내시경 척추수술 | 디스크 조각 직접 제거 | 영구적 | 큰 탈출, 신경학적 결손, 보존치료 실패 | 수술적 접근 |
핵심은 위로 갈수록 통증 신호를 가려주는 것이고, 아래로 갈수록 통증의 원인을 직접 다룬다는 점입니다.
진통제를 6개월 먹어도 안 잡히는 통증, 신경차단술을 3회 이상 했는데도 한 달 안에 재발하는 통증, MRI에서 신경뿌리를 명백히 누르고 있는 큰 탈출, 발등이 떨어지거나 발바닥 감각이 사라지는 신경학적 결손이 있다면 — 더 이상 약과 주사로 시간을 버리실 이유가 없습니다.
내시경 척추수술이 '근본치료'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
전통적 디스크 수술은 등 가운데를 5~7cm 절개하고 근육을 박리한 뒤 척추뼈 일부를 제거해서 디스크에 접근했습니다. 이 방식은 효과적이지만 수술 후 등 근육의 위축, 척추 분절의 불안정, 수술 부위 통증이 길게 남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내시경 척추수술은 다릅니다. 7~8mm 크기의 작업 통로(working channel)를 통해 카메라와 미세 기구를 직접 디스크 병변까지 보내고, 신경을 누르고 있는 수핵 조각만 핀셋으로 집어내듯 제거합니다. 정상 디스크 조직, 척추뼈, 인대는 거의 손대지 않습니다.
조직학적으로 보면 의미가 있습니다. 전통 수술은 신경뿌리 주변에 흉터 조직(perineural fibrosis)을 광범위하게 남기는데, 이 흉터가 나중에 '수술은 잘 됐는데 통증은 그대로'라는 실패 증후군(failed back surgery syndrome)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내시경 수술은 접근 자체가 좁고 정확하기 때문에 이 흉터 형성이 현저히 적습니다.
수술 시간은 보통 30~60분, 입원은 1~2일, 일상복귀는 1~2주입니다. 60대, 70대 환자분들도 잘 견디시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물론 모든 디스크가 내시경 수술 대상이 되는 건 아닙니다. 다음 조건들을 함께 봅니다.
탈출된 디스크의 크기와 위치(중심형, 측방형, 추간공형), 신경학적 결손의 유무, 보존치료 기간(통상 6~12주), 환자의 활동 요구도, 동반된 협착증 정도, 척추 불안정성 여부 — 이런 요소들을 종합해서 내시경 수술이 적합한지, 다른 술식이 더 나은지를 판단합니다.
발바닥 감각이 둔해진다면 신경 손상 진행 신호일 수 있습니다
약을 끊는 정확한 순서
수술을 하든 하지 않든, 진통제 의존을 줄이는 데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무작정 끊으면 통증이 폭발하고, 무작정 계속 먹으면 의존이 깊어집니다.
먼저 마약성 진통제부터 단계적으로 감량합니다. 옥시코돈 10mg을 드시는 분이라면 2주 간격으로 20%씩 줄이는 게 일반적입니다. 갑자기 끊으면 금단증상이 강해서 환자분이 못 견디십니다. 동시에 저용량 가바펜틴이나 프레가발린으로 신경병증성 통증을 다리역할로 잡아줍니다.
NSAIDs는 위장과 신장 상태를 보면서 가장 마지막에 정리합니다. 60세 이상이면 PPI(위산억제제)를 함께 처방하는 게 안전합니다.
이 과정에서 통증이 다시 올라오면 — 그게 바로 약이 가리고 있던 진짜 통증입니다. 이 시점에 신경차단술이나 신경성형술 같은 중간 단계 시술을 끼워넣어 다리를 놓아줍니다. 그 다리 위에서 수술이 정말 필요한지 다시 평가합니다.
이런 단계적 접근을 하지 않고 수술실에 바로 들어가는 건 좋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단계적 접근만 평생 반복하면서 수술 시점을 놓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과연 기다리는 게 맞는 선택일까요? 신경이 6개월 이상 눌리면 회복되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는 점은 기억해두셔야 합니다.
디스크 환자가 피해야 할 자세 5가지, 일상에서 지키는 척추
수술 후 재발을 막는 코어 재활
내시경 수술이 끝났다고 끝이 아닙니다. 디스크 탈출의 근본 원인은 척추 주변 근육의 약화와 잘못된 자세 부하입니다. 이걸 그대로 두면 같은 자리, 또는 인접 분절에서 다시 탈출이 생길 수 있습니다.
수술 후 2주는 절대 안정과 보조기 착용입니다. 3주차부터 걷기 운동을 시작하고, 4주차부터 코어 운동을 단계적으로 도입합니다. 처음에는 누워서 하는 데드버그(dead bug), 버드독(bird dog) 같은 저부하 안정화 운동만 합니다. 6주가 지나면 플랭크와 글루트 브릿지를 추가하고, 8~12주에 본격적인 근력 운동으로 넘어갑니다.
특히 중요한 건 햄스트링과 둔근 유연성입니다. 이 두 근육이 짧으면 골반이 후방경사되면서 요추 전만이 깨지고, 디스크 후방으로 압력이 집중됩니다. 매일 5분 스트레칭만 해도 재발률이 의미 있게 떨어집니다.
체중 관리도 중요합니다. 체중이 10kg 늘면 요추에 가해지는 부하가 약 40kg 늘어납니다. 척추 입장에서는 매일 쌀 한 가마니를 더 들고 다니는 셈입니다.
마치며
진통제는 좋은 도구입니다. 다만 도구입니다. 도구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만성 디스크에서 약은 통증을 잡아주면서 우리 몸이 자연 치유로 갈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입니다. 그 시간 안에 자연 흡수가 일어나면 약을 끊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 시간이 지났는데도 약을 끊을 수 없다면, 그건 약 문제가 아니라 압박 문제입니다. 그때는 압박을 직접 푸는 시술이나 수술로 넘어가야 합니다.
약 먹는 기간이 6개월을 넘기고 있다면, 한 번쯤 영상검사를 다시 받고 치료 전략 전체를 점검해보십시오. 약을 끊을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 목적이며, 개인별 차이가 있으므로 전문의 상담을 권합니다.
현명신경외과의원 · 김상현 원장 · 신경외과 전문의 (20년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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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진통제를 오래 먹으면 내성이 생겨서 점점 효과가 떨어지나요?
A: 내성보다는 중추 감작이 더 큰 문제입니다. 지속적 신경 압박이 방치되면 신경계가 통증을 학습해서 같은 자극에도 더 크게 반응합니다. 약 용량을 늘려도 효과가 줄어드는 시점이 옵니다. 이 단계 진입 전 압박 원인을 해결하는 판단이 필요하며 개인차가 있어 전문의 상담이 필요합니다.
Q: 약을 끊었을 때 며칠 안에 다시 아프면 수술을 고려해야 하나요?
A: 약 중단 후 빠르게 재발한다면 압박이 활성 상태로 남아 있다는 신호입니다. 다만 수술이 유일한 답은 아닙니다. 신경성형술, 신경차단술 같은 비수술 옵션도 있으며 MRI상 압박 정도, 근력 저하 동반 여부, 일상 지장 수준을 함께 봐야 합니다. 진료실에서 영상과 신경학적 검진을 종합해 결정합니다.
Q: 가바펜틴이나 프레가발린은 일반 진통제와 뭐가 다른가요?
A: NSAIDs는 염증으로 인한 통증을, 가바펜틴 계열은 손상된 신경 자체의 비정상 신호를 진정시킵니다. 신경뿌리병증에서 저린감, 찌릿함, 화끈거림 같은 신경통 양상에 쓰입니다. 다만 두 계열 모두 압박 자체는 해결하지 못합니다. 졸음, 어지럼 같은 부작용이 있어 처방은 전문의 판단을 따라야 합니다.
Q: 약으로 통증이 잡히면 디스크가 자연 흡수될 때까지 그냥 버텨도 되나요?
A: 디스크 자연 흡수는 일부 환자에서 가능하지만 모두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통증이 약으로 가려진 사이 신경뿌리에 부종과 탈수초화가 진행되면 디스크가 줄어도 통증이 남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다리 저림 악화, 근력 저하, 배뇨 이상 같은 신호가 보이면 즉시 재평가가 필요합니다.
참고 문헌
- Kim CL, Hong SJ, Lim YH, Jeong JH, Moon HS, Choi HR, Park SK, Jung S (2020). . . DOI: 10.3344/kjp.2020.3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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